7년 전 교훈 "트럼프와 관세 협상, 순번 늦을수록 손해" [트럼프 어게인⑤]

지난달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공화당 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공화당 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고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전세계에 보편 관세를 부과하려 한다면, 한국은 다른 무역 경쟁국보다 먼저 통상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16일 중앙일보가 한 역대 통상교섭본부장 4인(김종훈·박태호·유명희·여한구)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다.

유 전 본부장은 “순번이 뒤로 밀릴수록 손해가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2018년 트럼프 1기 미국 정부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에 근거한 판단이다. 당시에도 미 정부가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해외 국가들에 고율 관세 압박을 가하자 한국 정부가 가장 먼저 통상 협상에 나섰다. 한국은 픽업트럭 관세 철폐 시한을 2021년에서 2041년으로 20년 연장하는 정도만 양보했을 뿐 한·미 FTA를 큰 틀에서 지킬 수 있었다. 반면 뒤이어 협상에 나선 캐나다·멕시코는 한국보다 더 많이 내줘야 했다.

예를 들어 한·미 FTA 개정으로 관세 면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한국산 자동차의 부품 원산지 인정 기준은 35%로 유지됐다. 역내산(한국산·미국산) 부품을 최소 35% 쓰면 관세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후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를 체결한 캐나다·멕시코의 원산지 기준은 62.5%에서 75%로 올라갔다. 이는 선행 협상의 결과가 후행 협상의 출발선으로 작용하면서, 미국이 점차 요구를 강화한 결과다. 유 전 본부장은 “이번에는 한국이 트럼프의 최우선 타깃(중국·캐나다·멕시코 등)은 아니어서 가장 먼저 움직일 필요는 없지만,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선 가급적 신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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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충분한 준비 없이 무턱대고 서두르면 오히려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지적(박 전 본부장)도 나왔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이 당선 직후 “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급히 트럼프 당선인 자택을 찾아갔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이 공개적으로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길 바란다”며 조롱하는 결과만 낳았다. 결국, 캐나다 내의 비판 여론 등에 따라 트뤼도 총리는 사퇴 의사를 표명한 상태다.

트럼프 차기 미국 정부와 협상할 때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를 피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어떻게 해소해줄 건가”에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보편관세를 도입하면 미국 내 물가상승률이 올라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식의 언급은 감정을 자극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여 전 본부장은 “트럼프와 그 측근들은 관세를 부과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줄이면서 관세를 부과할지 고민 중”이라며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이견을 가진 인사가 없이 완전히 일치된 생각을 갖고 전력을 쏟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와 협상할 때 여러 건을 건별로 대응하기보다는 통상을 포함한 경제 이슈와 안보 등 이슈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패키지 딜이 유리하다”는 뜻을 내놓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촉박한 시간 아래 상대를 압박하는 협상의 달인인 점을 고려하면 가능한 한 모든 옵션을 펼쳐 놓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협상하는 게 손익의 균형을 맞추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건별로 협상하다간 최악의 경우 얻는 건 없고 내주기만 할 위험이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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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직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조선업 분야에서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일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김 전 본부장은 “좋게만 보지 말고 실질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했다. 미국은 조선업 쇠퇴로 군함 정비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에 한국 조선 기업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데, 미국이 치러야 할 비용을 깎거나 한국 정부가 부담하도록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국내의 정국 불안을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고 통상교섭본부장들은 입을 모아 경고했다. 대통령이 사실상 부재한 상태에선 수많은 기업과 정부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기도 어렵고 협상을 진행할 추진력도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김 전 본부장은 “이해타산에 밝은 트럼프는 한국의 정국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려주기보다는 그 틈을 이용해 한국을 상대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밖에 미국이 최우선 타깃인 중국을 압박하며 한국에 동참을 요구하더라도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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