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와 내치를 담당할 장관 후보자들이 16일(현시지간) 미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각각 ‘달러 패권’과 ‘에너지 패권’이란 말을 전면에 내세웠다.
현지시간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0일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 성조기가 게양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로써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구상하는 정책적 목표가 더 선명해졌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강화하고, 에너지의 국제적 지배력을 확대해 궁극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데 있다는 점을 구체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상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베센트 재무장관 후보자는 “재무부는 결정적으로 미국의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제재를 너무 많이 썼고, 제재가 달러를 사용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며 “트럼프는 (제재를 대체해) 관세를 협상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무부 장관 지명자인 스콧 베센트가 16일(현지시간) 상원 재무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통상 미국의 경제제재 대상이 되면 미 금융기관과 거래가 차단돼 달러 사용에 제약을 받는다. 중국의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달러화 거래 차단을 동반한 제재가 달러화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게 베센트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그는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관세를 사용할 것”이라며 ▶관세를 통해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바로잡고, ▶연방정부의 예산 수입을 증대하며, ▶제재를 대체할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활용하게 될 3가지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100% 관세” 예고…대안은 비트코인?
앞서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중국과 인도가 포함된 비(非)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가 달러화 결제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기류에 대해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해 미국 시장과 작별하게 만들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그런데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선 달러가 해외에서 대규모로 유통돼야 하고, 이는 미국의 무역 적자가 사실상 전제돼야 가능하다. 무역 수지 개선을 공약한 트럼프의 주장과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7월 비트코인 2024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트럼프가 지난해 7월 비트코인 콘퍼런스 연설 전 가상화폐 업계 임원들과 비공개로 만나 비트코인 비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언급했다”며 “국가의 기존 자산을 국가적 비트코인 비축량을 핵심으로 하도록 전환하다는 약속을 내놨다”고 전했다.
현재 전 세계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 중 60%가 달러다. 트럼프의 말대로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달러가 미국으로 되돌아오게 하려면 대체 비축 수단이 필요한데, 비트코인이 이를 위한 수단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더그 버검 내무장관 후보자는 에너지 패권을 강조했다. 그는 상원 에너지·천연자원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에서 “트럼프의 에너지 패권 비전은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종식하고 인플레이션을 낮춰 모든 미국인의 삶의 비용을 더 저렴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내무부 장관 후보자인 더그 버검 전 주지사가 16일(현지시간) 상원 에너지 및 천연자원위원회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버검은 “미국의 에너지 생산이 제한되더라도 에너지 수요는 줄어들지 않는다”며 “독재자가 이끄는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의 (원유) 생산이 늘어날 뿐”이라고 했다. 미국의 원유 생산을 무제한으로 허용해 국내적으로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에너지 수출로 전쟁 비용을 충당하는 적대국들의 수입원을 봉쇄한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내무부가 주도하겠다는 의미다.
버검은 또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 “중국이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전 세계 광물의 85%를 장악한 시기에 전기차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도록 한 것”이라며 “이는 중국과 냉전과 사이버전쟁이 벌어지고 북한과 러시아가 도발하는 시점에 적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아지도록 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버검은 특히 미국의 강경한 외교 정책을 ‘큰 방망이(big stick)’에 비유한 시오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1901~1909년 재임)의 발언을 소개하며 “트럼프의 에너지 패권은 미국의 큰 방망이가 돼 역사적 번영과 세계 평화를 이루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기축 통화로 인정되는 달러화의 지배력을 강조하며, 브릭스가 달러를 기축 통화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트럼프 1기 때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던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위원은 이날 공개한 글에서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제조업이 약화되고 대미 투자에도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반도체 산업이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된 대표적 분야”라며 “트럼프와의 협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은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